2013년에 한국 에이콘출판에서 출시된 "우리가 어나니머스다". 제목이 상당히 끌려서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으아.. 생각보다 책이 너무 두껍고 스토리가 길어서 힘들었다. 다른 일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찔끔찔끔 읽다가 4년만에 겨우 다 읽었다. 원제는 We Are Anonymous, Parmy Olson 이다. 

2008년부터, 어나니머스는 수많은 서버를 공격해 망가뜨렸고, 이메일을 훔쳤으며 웹사이트들을 다운시킴으로써 그들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언론 매체나 경찰, 심지어 해커 자신들마저도 어나니머스라는 존재를 각기 다르게 생각했다. 이상, 사회 운동, 범죄 조직 등 사람에 따라 그리는 어나니머스의 모습은 천차 만별이었다. 2012년 3월까지도, 일반 대중과 일부 얼론 매체는 어나니머스를 해킹 공격을 계획한 뒤 명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대규모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은 그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자생하여 발전한 집단이다. 


한국의 유명한 웹사이트 커뮤니티를 꼽자면 일베, 오유, 디씨인사이드 갤러리, 메갈, 워마드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 활동하는 갤러들을 어떠한 '조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곳에는 특별히 직위나 지휘체계가 없고, 단순히 익명의 유저들이 서로를 지칭하며 집단적으로 행동을 할 뿐, 그들은 실제로 서로 모르는 사이일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어나니머스도 처음에는 4chan.org 라는 일종의 채팅/게시판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그룹일 뿐이다. 포챈을 이용하던 10대들이 장난삼아 몇몇 호텔 사이트들을 공격하여 다운시키기 시작했고, 디도스 공격을 통해 상대방을 협박하는 행위들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러자 뉴스등의 매체에서는 이들을 '어나니머스, 엄청난 실력의 해커들'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게 된다. 당시 주도적으로 그룹활동을 이끌었던 사부, 케일라, 토피어리 등 역시 조직의 두목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가장 리더쉽있던 고정닉 사용자에 불과했다. 


'해커'는 누구나 알지만, 그 정확한 정의가 모호한 단어이다. 열정적인 프로그래머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이버 범죄자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나니머스 구성원들은 핵티비스트(Hacktivist, 해커와 행동주의자의 합성어. 컴퓨터 해킹을 투쟁 수단으로 삼아 활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행동주의자)로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슬로건처럼 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어나니머스다. We are Anonymous

우리는 사이버 군대다. We are Legion

우리는 용서를 모르며, We do not forgive

결코 망각하는 일이 없다. We do not forget

우리를 맞이하라. Expect Us

어나니머스는 2008년 사이언톨로지 종교, 위키리스크, 페이팔, 소니 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CIA 공식 웹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가하는 대범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참여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또는 자신이 생각했던 그룹의 모습과는 달라졌다는 회의감에 어나니머스에 가담하던 것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일부 의견차의로 인해 소그룹인 어논옵스, 룰즈섹, 안티섹 등으로 분할되어 저마다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반대하는 백트레이스라는 반 어나니머스 집단도 있었다. 실제로 '어나니머스'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집단은 보통 룰즈섹 국제해킹집단을 의미한다.


룰즈섹을 만든 사람은 사부와 토피어리, 케일라 이렇게 3사람이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를 공격 목표로 삼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들은 지오핫츠라는 유명한 해커를 고소한 소니를 상대로 디도스 공격으로 복수하였고, 해당 네트워크는 복구되는데 4개월 이상 소요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영국정부의 수사기관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해커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있었지만, CIA와 FBI는 더이상 그들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이내 영국 경찰은 케일라로 추정되는 24세의 라이언 아크로이드, 티플로우로 알려진 16세 소년, 토피어리(실명 제이크 데이비스) 등을 줄줄이 검거하였다. 경찰들은 도대체 이러한 신출귀몰한 해커들을 어떻게 잡았던 것일까?


사실 어나니머스에서 활동하던 닉네임 '사부(Sabu)'가 변절했던 것이다.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사부에게 12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물론 혐의 대부분은 컴퓨터 해킹과 관련된 죄목이었다. 이 모든 죄목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총 1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연방 정부와의 '업무 협약'에 동의만 한다면, 징역기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FBI 는 사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사부는 FBI 의 정보원으로 착실히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실제로 사부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마냥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한다. 사부는 에전과 다름없이 항상 밤부터 새벽까지 온라인에 접속해 동료 해커들과 채팅을 했고, 이를 통해 앞으로 진행될 해킹 공격에 관한 정보를 미리 얻어냈다. 이 때문에 어나니머스들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의 벽에 부딪혔다. 리더 격인 사부가 FBI의 프락치였으니, 취약점을 찾을 때마다 FBI에 모든 내용이 보고되었고, 경찰측이 먼저 손을 썼기에 해커들은 제대로 공격을 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11년 8월까지, 사부는 FBI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해커들이 공격 대상을 노리던 150여 개의 컴퓨터 네트워크 취약점을 해킹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사부는 어나니머스 해커들이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300여 개의 정부와 기업 네트워크의 취약점 정보를 FBI에게 넘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부는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경찰과 일하면서 지금껏 함께한 모든 팀원들을 속여 그들의 정체를 팔아 넘겼다. 사부의 이중 스파이 역할 때문에 토피어리와 티플로우, 케일라, 제레미 하몬드, 팔라듐 등 총 5명의 동료 해커들이 체포되었다. 때문에 그의 정체에 대해 일부 의구심을 드러내는 해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부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해커들이 많다는 사실은 사부가 그만큼 거짓말에 매우 능한 사람이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인물임을 방증한다. 어쨌거나 2012년 3월 6일, 폭스 뉴스는 사부의 진실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해커는 FBI의 정보원이었다. 그의 진짜 신분은 헥터 몽세구르이며, 경찰이 다섯 명의 다른 해커들을 체포하는 데 조력했다. 사부의 배신은 조직을 완전히 파괴했다."


여기까지가 이 책에 담겨있는 어나니머스의 시초부터 근황까지이다. 인터넷 핵티비즘을 주요 활동의 근간으로 삼는 어나니머스를 보는 시각은 당연히 둘로 갈린다. 기업과 정부의 떳떳하지 못한 비밀 계획을 폭로하고 인터넷의 자유 정신을 수호하는 로빈후드 같은 존재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개인정보를 폭로하고 사기업이나 정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악동으로 보는 이도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어나니머스의 위법 행위는 벌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사실 인터넷 세계도 실세계와 마찬가지로 그리 간단하지 않아 이런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 사회 운동이나 핵티비즘에 대한 몰이해 역시 어나니머스의 진면모가 유명세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이기도 한데, 그렇기에 본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외에도 2016년에 에이콘출판에서 어나니머스의 여러 가지 얼굴 이라는 책을 추가로 출간하였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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